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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예비군 이야기

@Jay 2007. 9. 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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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예비군 훈련날, 하늘이 너무나 화창해서 점심시간에 찍어봤다. 그 느낌이 살아있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아래쪽에 살짝 보이는건 현역병들의 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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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만 입으면 왜그리 잠이 쏟아질까. 가끔 평소에 젠틀하고 매너좋은 사람도 운전석에 앉으면 돌변하듯이, 멀쩡하던 사람들도 군복을 입혀놓으면 뭔가 사회부적응자 혹은 동네 양아치스러운 느낌이 자연스레 묻어나온다. 그와 동시에 군복을 입은 자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엄청난 피곤감과 졸음. 아마도 입어본 사람들은 공감하는 느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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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부대안에서 총메고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 보니, 예전 군대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스쳐갔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기억들. 추억을 되새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봤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

명확한 계급구조를 통하여 상하관계가 확실하고, 철저히 명령을 통하여 통제되는 사람들의 관계가 군대이다. 돌아보면 내게 일을 지시하던 간부들과의 관계에서의 나와, 내무실에서 아래 후임들을 여럿둔 상급 선임으로써의 나는 수많은 교집합에 서 있던 시절이었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쌓인 피로와 각종 작업과 잡무들로 인한 스트레스로 눈앞에 닥친 일들만 해치우기 바빴던 그 시절. 조금더 멀리 그리고 넓게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았었더라면, 정말 더 많이 느끼고 성장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제서야 남는다. 오로지 불평불만만이었던 그 시절에.

사람을 관리하는 법, 그리고 지시와 관리를 당하는 입장에서의 처신의 방법 등 요즈엔 내게 있어서 명확한 나만의 정의를 필요로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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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커뮤니티는 전세계적으로도 그러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의 커뮤니티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예비군 훈련에 모인 사람들의 집합도 정말 재미있다. 연령대는 어느정도 상한과 하한선을 가지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살아가면서 전혀 부딪힐 일이 없을법한 사람들도 포함된 사회적으로 정말 다양한 위치와 역할의 사람들의 모임.

또한 운이 좋으면 동네 친구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정말로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와는 또 다른 환경. 다양한 사람들의 적응방식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어쩔줄 모르고 매우 불편했지만 3년차가 되니 이젠 여유가 생기나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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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선발 업무를 담당하는 우리부서에서 일하던 중 우리부서 분들 조차 모르게 조용히 지원해서 선발되어 뒷통수 치고 훌쩍 떠나버린 후임 녀석 하나. 그 녀석 자리에 들어온 정말 센스없고 눈치 없던 제주도 출신 초등학교 선생 후임 둘. 그리고 정말 코드가 안맞고 학벌을 거들먹거리며 인신공격하던 선임 셋. 지금 만난다면? 하고 아주 잠깐 생각해봤다. 훗. 이보다는 좋고 고마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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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계단에 앉았다. 음악을 들으며, 하늘도 보고, 조용히 생각들을 메모도 하면서 정말 오랫만에 의외의 장소에서 평온한 시간을 가졌다. 다시 돌아가긴 싫지만, 가끔 군대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진다. 몸과 마음이 최고로 단순화되었던 2년 1개월의 시간들이. 지금의 내겐 작은 일들조차 왜이리 복잡하게만 느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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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이제 이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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